나무라디오

이상국 - 아시는 지 모르지만

아시는지 모르지만 나무 이파리나 풀잎들이 원래는 햇빛을 잘 간수하기 위해 검은색이었지요. 그런데 온갖 풀벌레들의 몸이 초록색이니까 그들의 집이 되어주기 위해 저들도 제 몸을 파랗게 만든 것입니다.

흙도 그렇습니다.
처음 해에서 떨어져나올 때는 불기를 머금어 불그스레했는데 지렁이나 인간 같은 것들이 낯설어할까봐 지금처럼 누렇게 된 것입니다.

겨울 가을 봄 여름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.
그러다가 털 없는 짐승이나 날개 가진 것들 혹은 하루살이나 나무들이 골고루 살라고 나중에 하늘이 제 몸을 갈라 준 것입니다.

저도 원래는 시인이 아니고 설악산 아래 사는 이름 없는 처사였습니다. 그런데 이런 것도 시라 쓰면 천지만물이 달려들어 자꾸 제 시의 편을 들어주는 것입니다. 아시는지 모르지만



<달은 아직 그 달이다>
창작과 비평. 2016년

(October 6th 2020)  /  2020